제목: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정희진
일명 ‘n번방’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가 수면위로 드러난 후, 한동안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아동과 청소년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이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가장 최근으로 거슬러 올라와 보자. 올해 9월 4일, 11살 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성관계까지 한 성인 남성 두 명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각각 39살, 21살인 이 남성들은 피해자에게 4000만원과 500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실형을 면했다. 9월 10일에는 13세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시키고 돈을 챙긴 20대 남성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피해자의 부모는 엄한 처벌을 원했지만, 그 요구는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젠더 기반 폭력에 관대한 사회, 즉 여성의 인권이 남성과 동등하게 여겨지지 않는 공적 구조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변화를 꾀해야 할까. 한국 사회 일상의 성차별적 구조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여성주의의 새로운 도전을 제시하는 이 책을 통해 그 해답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초반에는 여성주의 인식론과 그 필요성을 제시한다. 특히 상호 의존적인 인권 문제를 주요하게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일 수는 없기에,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는 저자의 통찰은 특히 주목할만하다. 내 안의 교차성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기 보다는 각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소통하고 연대하며 인간 권리의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노력, 이는 여성주의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이 노력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 사유와는 구분된다. ‘대의’를 위해서 단결과 통합을 외치며, 여성 등 소수자의 요구는 ‘부분’화 시켜버리는 이분법적 시각은 이 책의 주요 비판지점이다.
인식론을 다룬 후, 저자는 본격적으로 여성주의의 다양한 이슈들을 풀어낸다. 신성시 하면서도 그 노동과 희생은 정작 평가절하되어온 우리의 ‘어머니’상, 그런 어머니가 사회로 나왔을 때 혐오스러운 ‘아줌마’로 변모하는 일련의 차별적 시각들을 고발하고, 가정폭력을 비롯한 젠더 기반 폭력과 피해자에게 강요하는 ‘피해자다움’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그리고 여성의 시각에서 인권을 재조명한다.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진다”는 말은, 당위적 진리가 아닌 추구해야할 가치라고 저자는 말한다. 현실에서는 특정 사회가 어떤 조건을 가진 사람을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는지에 따라, 인권은 달리 해석되고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나는 사람을 때린 것이 아니라 ‘집’사람을 때렸다”고 주장한 사례를 보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인권을 가진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알 수 있다. 결혼한 여성을 남편에게 귀속된 부속품처럼 간주하는 시각은, 가정폭력을 사회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실제로 가정폭력을 경찰에 신고하면, ‘남편을 잘 달래보라’는 식의 이야기를 꺼내는 경찰들도 있다고 한다. 결혼한 여성을 남편에게 귀속된 부속품처럼 간주하는 시각은, 가정폭력을 사회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실제로 가정폭력을 경찰에 신고하면, ‘남편을 잘 달래보라’는 식의 이야기를 꺼내는 경찰들도 있다고 한다. 전쟁, 조직폭력, 학교폭력의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감동시켜 폭력을 멈추게 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성을 타자화 하고 대상화 해 온 우리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은 아직도 주체적 인간으로 인식되지 못한다.
이 책은 그 외에도 한국사회 전반의 성정치학과 여성의 인권 실태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젠더 기반 폭력이 결국 이를 묵인하는 사회의 불평등한 인식에서 기인함을 분석하는 저자의 통찰력은, 우리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 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매년 9월 넷째 주는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 3조에 의거한 성매매 추방주간이다. 성매매 추방 주간을 맞아, 여성주의의 새로운 도전을 이 책을 통해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더욱 성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휴먼아시아 자원봉사자 배지현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