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환 대표님께서 디자인 해주신 아시아인권포럼 포스터

매년 개최되어 온 아시아인권포럼은 휴먼아시아에서 실시하는 주요활동 중 하나입니다. 2006년 이후 아시아인권포럼은 각계각층의 인권전문가들이 모여 아시아의 인권문제를 짚어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토론의 장으로써 자리매김하게 되었는데요. 매번 눈을 사로잡는 디자인의 포스터를 통해 저희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끌도록 힘써주신 든든한 조력자 한 분이 계십니다. 이번에는 저희 단체의 리플렛과 활동보고서를 디자인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번 달 Hurasia는 시각 디자인 협회 이사이시며 사진작가이신 조의환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2013년 8월 9일 작성글)

1. 우선 휴먼아시아에 많은 도움을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1954년 경북 김천 출신으로 삼형제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고 김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하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신문출판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1976년 육군소위로 임관, 보병 소대장, 육군본부 제병지휘부 등을 거쳐 1976년 중위로 소집해제된 ROTC 14기 출신입니다. 1978년 LG애드 광고디자이너를 시작으로 1980년부터는 출판, 잡지, 신문 등 줄곧 인쇄매체에서 편집디자이너로, 잡지 편집장, 신문 편집위원, 디자인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2007년 퇴사 후 디자인54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들었고 평생 디자인 현장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2011년 오랫동안 계획했던 사진 전시회를 열고 사진집을 출간하며 사진가로 데뷔했습니다.

2. 오랫동안 조선일보에서 일을 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조선일보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었고 저희 단체와 처음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1984년 조선일보 출판국에 입사 ‘월간조선’ 리디자인을 비롯해 ‘가정조선’ 창간, 여성지 ‘FEEL’ 편집장, 출판국 미술부장, 편집국 편집위원, 조선일보 디자인연구소장을 거쳤습니다.

주로 잡지, 신문, 출판의 편집디자인이 주 업무였고 그박에 조선일보가 기획한 대형 전시, ‘아! 고구려’, ‘대한민국 건국50주년 특별기획전 우리들의 이야기’, ‘이승만과 나라세우기’, ‘6.25 50주년 특별기획전’, ‘이승은 허헌선인형전 엄마 어렸을적엔…’ 등의 전시 기획자로 일했습니다.

1998년 조선일보의 가로쓰기 리디자인을 총괄하는 아트디렉션하면서 현재 조선일보 지면에 쓰이는 가로쓰기 전용활자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첫 국제회의를 열 때 조선일보와 인연을 맺으며 당시 행사관련 디자인과 진행에 대한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큰 뜻을 펼치시는 여러분들의 울림이 가슴에 다가와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자연스럽게 휴먼아시아와도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3. 올해 아시아 인권포럼 포스터에 실린 사진은 상당히 이색적이었습니다. 함축된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은데요. 특별히 포스터의 사진을 고른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 사진을 통해 전달하시고픈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그 사진은 사실 저의 첫 개인전에 발표하려고 준비해 둔 미발표 작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전시회에 발표하기 전에 미리 포스터에 사용한 것이지요. 마치 인골과 같은 느낌이 드는데 사실 이 오브제는 오랜 시간 바다를 떠돌며 갈리고 깎인 작은 나무토막입니다. 오랜 세월 파도에 쓸려 다니며 본래 나무의 형태는 사라졌지만 제 눈에 띄어 사진 작품의 주인공이 도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작업을 시간에 대한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땅이라는 고향을 떠나 오랜 시간 바다를 방황하고 정처 없이 떠돌다 낯선 해안에 상륙한 나무토막을 보는 순간 표류, 난민, 보트피플, 윤회 등의 단어를 연상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도 해변을 3년여 돌아다니며 수집한 이 작은 나무토막을 사진으로 만들어 지난 4월19일부터 5월18일까지 FLUX라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4. 이번엔 저희 휴먼아시아 포스터뿐만 아니라 활동보고서와 리플릿까지 도움을 주시게 되었습니다. 작업을 하시는 데 있어서 특별히 주안점을 두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저는 장식적이고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간결한 디자인을 좋아합니다. 매체 디자인을 오래한 때문인지 몰라도 군더더기를 없애 명쾌한 전달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에 신경을 씁니다. 디자인이 너무 과하면 오히려 디자인만 눈에 띄고 본질이 묻히게 되므로 전달에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가급적 노이즈를 없애는 데 주력합니다. 그리도 적은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도록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덤덤하거나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디자인이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5. 혹시 앞으로 휴먼아시아와 함께 하시고픈 작업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가능할지 모르지만 사진으로 아시아 지역 소수민족을 기록하는 일을 한 번 해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직장에 메여있어서 여행을 자주 할 수 없었지만 사실 약간 역마살이 있거든요.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진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꿈꿔 본 영역입니다. 인권 상황을 알리고 협력을 구하고 조력자를 설득하는 데는 강력한 표현 매체인 사진이 활용도가 매우 높습니다.

6. 그동안 저희와 같은 사회단체에 재능 기부를 해오시면서 많은 어려움과 보람을 느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또 그와 반대로 보람을 느끼신 순간이 있으셨다면 언제였는지 말씀해주세요.

사실 따지고 보면 재능기부란 말이 나오기도 전부터 재능기부를 해 온 격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데는 약간의 편안함이 있어서 오래 가는 모양입니다. 어차피 비즈니스가 아니기 때문에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거든요, 과장하면 하고 맘껏 해 볼 수 있다는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있지요. 이래라 저래라 하면 서로 짜증나고 억만금을 준데도 다시는 하기 싫거든요. 기부한다는데 누가 괴롭히지 않잖습니까. 함께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곤 하지요, 그 때 정말 보람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제는 저보다 아주 많이 젊은 분들과 일을 하게 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너무들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하기야 삼촌이나 아버지뻘이 되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머뭇거리며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나이 먹은 오라버니나 막내 삼촌처럼 편안하게 대하시면 저도 좋은데… 그러기엔 너무 연식이 오래된 것 같습니다.